농사란 백성에게 이로운 것이다. (···) 옛날의 현명한 목민관은 권농을 부지런히 하는 것을 자신의 명성과 공적으로 삼았으니, 권농은 목민관의 으뜸가는 책무이다. (···) 농사만 권장할 것이 아니라 원예, 목축, 양잠, 길쌈 등의 일도 권장해야 한다. 농사는 식생활의 근본이고, 양잠은 의복 생활의 근본이다. (···) 농기구와 베 짜는 기구들을 만들어 백성들이 용구를 편리하게 쓸 수 있게 하고 백성들의 생활을 넉넉하게 하는 것이 목민관의 힘쓸 일이다. (···) 총괄해서 보건대 권농의 정사는 마땅히 먼저 각기 직분을 정해 주어야 한다. 직책을 나누어 맡기지 않고 이일 저일 분별없이 시키는 것은 옛 훌륭한 왕의 법이 아니다.
- 『목민심서』 호전戶典편, 권농勸農 중
권농이란 농사를 권장한다는 뜻이다. ‘권농’ 조항의 첫 구절은
“농사란 백성에게 이로운 것이다”란 말로 시작한다. 그런데도 스스로
힘쓰지 못하기에 옛날부터 훌륭한 왕은 백성이 농사에 힘쓰도록
권장했다고 역사적 사례를 상세히 소개했다.
다산은 권농이 목민관에게 으뜸의 책무라고 말했다. “옛날의 현명한
목민관은 권농을 부지런히 하는 것을 자신의 명성과 공적으로
삼았으니, 권농은 목민관의 으뜸가는 책무이다”라고 강조하며 권농을
잘한 목민관의 사례를 칭찬하듯 소개했다.
이어서 다산은 권농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권농의 요체는 세금을
덜어 주고 가볍게 함으로써 그 근본을 배양하는 데 있다. 그렇게
해야 토지가 개간되고 넓혀진다.” 농업진흥책의 하나로 감세정책을
든 것이다. 오늘날에도 세금 감면은 산업진흥의 효과적인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다산은 나아가 곡식 위주의 농업에서 탈피하여 농업의 다양화를
요구하고 있다. “농사만 권장할 것이 아니라 원예, 목축, 양잠, 길쌈
등의 일도 권장해야 한다.” 이는 다양한 사회적 수요에 부응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농가소득을 올리는 길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양잠에 대해서는 더욱 권장하고 있다. “농사는
식생활의 근본이고, 양잠은 의복 생활의 근본이다. 뽕나무 심기를
권장함은 목민관의 중요한 임무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과
생활을 ‘의·식·주’로 압축하듯 의복 생활도 식생활만큼 중요한
것인데, 뽕나무를 길러 누에를 치고 명주를 짜는 것은 의복 생활을
풍요롭게 하면서 동시에 농가소득을 올리는 지름길이었다.
또한 “농기구와 베 짜는 기구들을 만들어 백성들이 용구를 편리하게
쓸 수 있게 하고”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다산은 농업기술
발전에 관심이 높았다.
다산은 일찍이 관리로 있을 때, 정조 임금의 요구에 부응하는
농업진흥책으로 편농便農, 후농厚農,
상농上農의 삼농三農을 주장한 바 있다.
다산은 농업의 현실이 수고롭고, 이익이 많이 나지 않으며,
사회적으로 대접받지 못한다고 보았다. 이런 현실 속에서는 아무리
농업이 중요하다고 해도 농업을 권장할 수가 없다. 그래서 농사를
편하게 할 수 있고, 농업이 이익이 있게 하고, 농민의 지위를
높이려고 한 것이 바로 편농, 후농, 상농이었다.
다산이 볼 때 농사가 수고로운 까닭은 농기구가 좋지 않기
때문이었다. 농기구를 개선해야 편농이 가능해진다. 이런 주장은
『목민심서』에서도 강조되었다. 외국에서 간행된 농서에 나와 있는
농기구를 만들어 시험해 보고, 편리하다면 옛날 것을 버리고 좋은
것을 받아들이도록 하라는 것도 그 하나다.
권농이 중요하다 하여 관에서 분별없이 마구 권장하는 것은 자칫
뜻밖의 낭패를 당할 수 있어 경계했다. “총괄해서 보건대 권농의
정사는 마땅히 먼저 각기 직분을 정해 주어야 한다. 직책을 나누어
맡기지 않고 이 일 저 일 분별없이 시키는 것은 옛 훌륭한 왕의 법이
아니다.” 권농의 일에 좀 더 조직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을 다산은
주문한 것이다.
오늘날 전체 산업 가운데 농업의 비중은 감소했다. 그렇지만 의식
생활에서 볼 때 농업의 중요성은 여전히 일차적이고 근원적이다.
또한 오늘날 연관 산업을 고려할 때, 농업의 다양화와 농기구 발전은
단지 농업에 국한되지 않고 그 이상의 산업 발전을 의미하게 되었다.
농업에 관한 지방행정 책임자의 책무를 강조한 다산의 말은,
농업국가 시대의 옛날 얘기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에도 새겨 볼
메시지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