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냉장고(외관), 국립농업박물관 소장
인류 최초의 냉장고, 빙고
권력과 부를 장악한 지배층은 한겨울에 꽁꽁 언 얼음을 지하의
저장고에 보관하여 한여름에 소비할 수 있었다. 세계 각 곳에
유적으로 전해지는 빙고氷庫, Ice house는 인류 최초의 냉장고다. 빙고는 한겨울에 얼음을 쉽게 옮길 수
있는 호수나 강 근처에 있었다. 빙고의 건축물은 단열을 위해서
지하 혹은 반지하에 지었고, 벽은 짚이나 톱밥 등을 채워 넣었다.
조선시대 서울을 비롯하여 고위직 관리가 머무는 고을의 으뜸
도시인 도읍은 ‘석빙고石氷庫’라는 얼음 저장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겨울에 강에서 꽁꽁 언 얼음을 캐서 지하에 돌로
만든 석빙고에 보관했다. 지금은 동네 이름으로 알려진 서울의
동빙고東氷庫와 서빙고西氷庫는 조선시대
왕실에서 사용했던 얼음을 저장해 둔 창고의 이름이었다.
동빙고의 얼음은 음력 3월부터 9월 사이에 왕실의 제사에 올리는
음식을 부패치 않게 하거나, 차가운 음식을 만들 때 쓰였다.
서빙고의 얼음은 한여름에 왕실의 구성원에게 제공되었다. 특히
마지막까지 남긴 얼음은 활인서活人署*의 외상 환자 치료용이었다. 하지만 두 곳의 빙고에 저장된
얼음은 음력 6월 즈음이면 대부분 녹아 없어졌다.
* 활인서: 조선시대에 서울 내 의료 업무를 담당하던 관아

나무냉장고(열린 상태), 국립농업박물관 소장
천연빙 저장공장과 얼음 냉장고의 등장
18세기 중반 이래 산업도시가 서유럽과 북미의 곳곳에 들어서자,
발명가들은 한여름에도 얼음이 녹지 않는 시설을 만드는 실험에
열중했다. 1859년 프랑스의 기계 설계자 페르디낭 카레Ferdinand Carre, 1824~1900는 암모니아가 물보다 훨씬 낮은 온도에서 액화되므로 더 많은 열을
흡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이를 냉매로 활용해 천연빙 저장
기술을 개발했다. 이후 북미와 서유럽의 대도시 근처에는 한겨울에
캐낸 얼음을 저장하는 천연빙 저장공장이 자리 잡았다.
1913년 4월 서울의 천연빙 저장공장이 지금의 용산 제1철로 근처에
들어섰다. 1910년대 중반 이후, 매년 3월 초순이면 신문에서 겨울에
한강·대동강 등에서 캐낸 얼음의 양이 얼마인가를 사람들에게
알렸다. 왜냐하면 천연빙 저장공장에서 확보한 얼음의 양에 따라
그해 여름의 얼음값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1920년대 서울과 평양의
시민들은 6월부터 얼음이 들어간 빙수와 냉면, 아이스크림 맛에
빠져들었다.
얼음 냉장고나무냉장고의 최초 개발자는 미국의 농부이자
나무 서랍장 제작자인 토마스 무어Thomas Moore로 알려진다. 그는 1802년에 삼나무의 속을 파 빈 원통을 만들고,
원통 안벽에 주석이나 아연을 대서 단열을 시도했다. 이후 진화를
거듭한 얼음 냉장고는 코르크, 톱밥, 짚, 해초 등을 안벽에 감싼
다음 주석이나 아연으로 안벽을 마감하고, 아래위로 칸이 나누어진
구조로 만들어졌다. 1900년대 초반 천연빙이 대량으로 시장에
나오면서 얼음 냉장고는 미국 부유한 가정의 필수품이 되었다.
1900년대 초반 일본에 알려진 미국의 얼음 냉장고가 한반도에 들어온
시기는 1910년대 후반이다. 당시 조선에 거주한 부유층 일본인과
일부 조선인 가정에서 일본에서 제작한 얼음 냉장고를 부엌에
들여놓았다. 1925년 10월 26일자 《동아일보》 3면에는 〈적당한
온도로 음식 식히는 방법〉이란 기사가 실렸다. “요리집 같은 곳은
물론이요 가정에서 냉장고라는 것을 씁니다. 다 아시는 바와 같이
냉장고 속에는 얼음을 위에 두고 음식을 밑에 둠으로 위에서 찬
공기와 아래 더운 공기가 늘 교환하여짐에 따라서 음식은 속히
식히는 것입니다.” 이 기사의 마지막에는 소고기, 생선, 우유 등의
‘냉장에 적당한 온도’를 적어 놓았다.

General Electric monitor top refrigerator,
1920~30년대, 미국, DDP디자인뮤지엄 소장
전기냉장고의 탄생과 가정 보급
그런데 얼음 냉장고의 한계는 얼음이 한여름에 매우 빨리 녹는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미국인 프레드릭 울프
주니어Frederick Wolf Jr., 1879~1954였다. 그는 1913년 얼음 냉장고 위에 냉장 장치를 둔
전기냉장고를 만들어 냈다. 1918년 윌리엄 듀런트William C. Durant, 1861~1947는 가정용 전기냉장고의 대량 생산을 시작했다. 1930년대 독립형
압축기에 쓰였던 암모니아와 같은 유독 가스를 안전한 프레온
가스로 대체하면서 가정용 전기냉장고는 미국 가정에 널리
보급되었다. 1940년대 미국에서 냉동식품이 등장하면서 가정용
냉장고에 냉동실이 자리 잡았다.
한국의 전기냉장고는 1965년 4월 금성사가 냉장실과 냉동실이 붙은
일체형 냉장고를 출시하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판매가격뿐만
아니라, 비싼 전기요금 문제로 부유층이 아니면 전기냉장고를 사기
어려웠다. 1977년 부가가치세가 도입되고 고소득자가 세금을 더
부담하게 되어 전기냉장고의 가격이 낮아졌고, 중산층 가정의
사용이 늘어났다. 1981년 한국 가정의 둘 중 한 집에서
전기냉장고를 갖추었다. 가정용 전기냉장고의 보급이 늘어난
198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인의 위암 발병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신선 제품을 많이 소비하면서 짠 음식을 덜 먹게 된 결과다.
1998년 한국형 전기냉장고인 김치냉장고가 세상에 나왔다. 오늘날
지구촌 가정에는 한국 가전기업의 브랜드를 붙인 고급 냉장고가
자랑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삼성 전기냉장고, 1980년대,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빙고에서 시작된 인류의 신선 식품에 대한 바람은 20세기 후반 전기냉장고의 대중화로 달성되었다. 하지만 전기냉장고에 쓰이는 냉매는 지구 온난화를 당기는 물체 중 하나다. 그렇다고 가정과 식품매장에서 전기냉장고를 없앨 수도 없다. 인류의 역사에서 진화를 거듭해 온 냉장고가 또 다른 발명을 통해 지구 온난화의 주범 자리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한다.
구분 | 연대 | 특징 |
---|---|---|
빙고 | 고대~20세기 초 | 겨울철 얼음을 저장해 여름까지 사용한 인류 최초의 냉장 저장시설 |
천연빙 저장공간 |
19세기 초 | 겨울 얼음을 활용한 산업화 시대 냉장 설비 |
얼음 냉장고 | 19~20세기 중 | 얼음을 이용해 음식 보관이 가능했던 초기 가정용 냉장고 |
전기냉장고 | 1913년 이후 | 냉장 장치로 음식을 안정적으로 보관하는 현대 가정의 필수 가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