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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정성미(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

구전으로 이어온 손맛,
삶을 담은 음식

의식주衣食住는 삶이자 문화이자 역사이다. 특히 농민의 삶과 맞닿아 있는 구전음식口傳飮食을 보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구전음식의 의미와 가치는 무엇이며 활용성은 어떻게 되는지, 되살리고 지켜내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전문가의 시선으로 깊이 있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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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히고 사라지는 우리네 서민 음식

우리의 식문화食文化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바로 알아야 하며, 앞선 세대의 음식을 가리키는 ‘전통음식’, ‘구전음식’, ‘지역음식’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세 가지를 혼재해서 사용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전통음식은 여러 세대를 거치며, 오랜 시간 동안 전승된 조리법과 식문화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농업을 기반으로 다양한 생활 문화를 형성해 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명절, 세시풍속, 의례 등 여러 공동체 문화가 탄생하였고, 전통음식 또한 풍부하게 이어져 왔다.
구전음식과 지역음식도 넓은 의미에서 전통음식에 포함될 수 있다. 다만 구전음식은 보다 서민적이고 생활 밀착형 음식을 강조한 것이다. 예를 들어 궁중음식은 식재료와 조리법이 여러 전통 조리서와 궁중의례 기록물에 정리되어 있지만, 구전음식은 구두 전승을 통해 전해진 민가의 음식이다. 시어머니에게서 며느리로, 어머니에게서 딸로 전해졌기 때문에, 지금은 고령 어르신들의 기억에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면담 조사를 통해 구체적인 조리법과 의미를 복원해야 한다. 최근 문화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구전음식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전승의 맥이 끊길 뿐 아니라, 그 존재조차 잊힐 위험에 놓여 있다.
지역음식이라는 용어는 지역성을 강하게 담고 있는 음식을 강조할 때 쓸 수 있다. 지역의 자연환경과 특산물에 따라 고유한 음식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예를 들어, 서해안 지역에서는 갯벌에서 채취한 조개류를 활용한 다양한 문화가, 강원도는 메밀, 감자, 옥수수 등을 주재료로 한 음식이 발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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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전통 나물 밥상

지혜와 정서가 담긴 무형유산의 가치

식도락食道樂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음식문화는 삶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전통음식에는 그 지역의 사람이 살아온 방식이 고스란히 녹아 있으며 풍부한 이야기도 담겨 있기에 ‘살아 있는 문화’라고 할 수 있다. 2024년 제19차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정부간위원회에서도 전통음식 관련 유산이 다수 신규 등재되며, 그 중요성이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 흐름은 분명한 질문을 던진다. ‘왜 전통음식과 같은 무형유산을 지켜야 하는가?’ 전통음식은 과거를 기억하게 하는 동시에, 오늘의 삶에도 새로운 의미로 이어질 수 있다. 전통음식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유물처럼 과거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지혜와 정서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기록으로 남은 전통 식문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된다. 먼저 기록으로만 전해지는 경우, 더 이상 실생활에서 접할 수는 없지만 역사적 자료로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당시의 사회 구조, 경제 수준, 자연환경 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한 시대의 사회상과 생활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소멸 위험에 처해 있지만 일부 전승이 이어지고 있는 경우에는 실천적이고 적극적인 활용이 가능한다. 지자체나 관련 기관이 이를 하나의 문화자원으로 인식하고 체계적으로 보존·활용하면 지역 정체성과 문화 다양성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때 기존에 남아 있는 기록 자료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리법 복원, 조리도구 재현, 관련 서사 정리 등이 모두 실천을 위한 기초 자료로 활용되며, 실질적인 재현 작업의 기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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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환경에 기반한 음식문화를
소개하는 일은
전통음식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더욱 깊이 있게 드러내는 작업이면서,
동시에 지속가능성의 실현과도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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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음식의 보전을 위한 기록화

전통 식문화를 지키고 이어가는 노력

전통음식 문화 보전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우선, 법적 보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일정한 기준에 따라 전통음식을 보호 종목으로 지정하고, 그에 맞는 지원과 관리를 수행하는 방식이다. 최근 국가유산청에서는 김치 담그기, 장 담그기, 막걸리 빚기, 떡 만들기와 같은 전통음식을 ‘공동체 종목’*으로 지정하였다. 물론 지정만으로 전통이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전통음식 보전을 위한 정책이 점차 확대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전통음식을 오늘날의 삶과 동떨어진 것으로 여기거나, 조리 과정이 번거롭다는 선입견이 있다. 인식 개선을 위해서는 대중의 관심과 접근성을 높이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방송, 웹 콘텐츠, SNS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전통음식의 매력을 대중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콘텐츠가 생산되어야 하며, 상업화와 상품화 전략도 이루어져야 한다. 전통음식을 현대인의 생활 양식에 맞게 재구성할 수 있다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
전통음식의 보전과 관련하여 국립농업박물관 역시도 고유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농업 생태와 식문화의 관계를 함께 살펴봄으로써, 전통음식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과 구체적인 활용이 가능하다. 또한 농업 생태계와 농촌의 전통 지식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전통음식에 담긴 생물학적·문화적 다양성을 교육적으로 해석하고 전시할 수 있는 우수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각 지역의 고유 품종과 환경에 기반한 음식문화를 소개하는 일은 우리나라의 전통음식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더욱 깊이 있게 드러내는 작업이면서, 동시에 지속가능성의 실현과도 맞닿아 있다.
이처럼 생태와 문화의 상호작용을 중심에 둔 해석연구, 전시, 교육은 국립농업박물관이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전통음식과 농업문화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며, 이 연관성을 깊이 있게 다루는 일은 전통음식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것이다. 국립농업박물관이 자연과 사람, 그리고 문화를 잇는 지식의 플랫폼이자 전통의 가치를 되살리는 핵심 기관으로 발돋움하기를 기대한다.

* 공동체 종목: 보유자(단체)를 별도로 인정하지 않고, 국민과 함께 전승하고 보존하는 무형 유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