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의 봄을 깨우는 노란 신호탄
매년 봄, 국립농업박물관의 다랑이논밭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아름다운 수선화 물결을 만날 수 있다. 추운 겨울 땅속에서 묵묵히
숨을 죽이고 있던 수선화들이 일제히 고개를 내밀며 봄의 시작을
알리기 때문이다. “이제 진짜 봄이 왔어요!”라고 속삭이는 이
꽃들은 박물관에서 가장 부지런한 봄의 전령사다.
박물관 곳곳에 수선화를 정성껏 심은 지 어느덧 3년, 이제 이곳은
관람객들 사이에서 “수선화가 피었으니 박물관에 가보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큰 사랑을 받는 공간이 되었다. 굽이진 길을
따라 펼쳐진 수선화 밭은 이제 우리 박물관에서 놓쳐서는 안 될
‘봄의 시그니처 경관’으로 굳건히 자리를 잡았다.
땅을 지키기 위한 우리들의 고민
사실 지금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 뒤에는 땅을 지키기 위한
박물관의 치열한 고민이 숨어있다. 개관 초기, 다랑이논밭 주변
녹지의 조경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아 집중호우가 쏟아졌던 적이
있었다. 땅이 채 다져지기도 전이라 비바람에 흙이 맥없이 쓸려
내려갔고, 야심 차게 심었던 잔디조차 뿌리를 내리지 못해 주변
녹지는 몹시 불안정한 상태였다.
그래서 우리는 흙을 단단히 붙잡아주면서도 관람객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해결사를 찾아 나섰다. 그때 선택된 주인공이 바로
수선화였다. 수선화는 땅속에서도 아주 기특한 일을 하기 때문이다.
뿌리에 두더지나 쥐가 싫어하는 성분이 들어있어, 녹지에 구멍을
내서 땅을 헐겁게 만드는 작은 동물들을 자연스럽게 쫓아내 주는
‘천연 보디가드’ 역할을 해낸다. 덕분에 저마다의 매력을 가진 다섯
가지 품종의 수선화는 비바람과 두더지로부터 땅을 지켜내는 든든한
파수꾼이 되었다.
함께 가꾼 마음이 활짝 피어났습니다
전시동과 교육동을 잇는 길목에 산수유가 피면 봄이 왔음을 알게
되고, 수선화가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면 우리는 “이제 땅이
녹았으니 한 해 농사를 시작할 때가 되었구나” 하고 본격적인 농사
준비에 들어간다. 수선화는 우리에게 가장 예쁜 ‘농사 시작
알람’인 셈이다. 처음에는 비바람에 씻겨나가는 땅을 보호하기
위해 심었지만, 그 속에는 박물관을 찾는 분들에게 가장 건강하고
아름다운 다랑이논밭 꽃길을 보여드리고 싶어 했던 우리들의
간절한 노력이 담겨 있다.
땅 한 평, 꽃 한 송이를 지키기 위해 고민하고 땀 흘렸던 시간이
모여 이제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밝혀주는 풍경이 되었다. 올봄,
다랑이논밭 길을 따라 흐드러지게 핀 수선화를 보며 그 속에 깃든
국립농업박물관의 진심 어린 마음까지 함께 느껴보는 건 어떨까?
여러분의 발걸음 닿는 곳마다 수선화가 전하는 따뜻한 봄의 위로가
가득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