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채용신, 《행실도》 10폭 병풍 중
<곽거득금郭巨得金>
2 <노래반의老萊班衣 >
근대 화가 채용신1850~1941이 그린 《행실도》
10폭 병풍은 백성을 가르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졌다. 이 병풍에는 충신과 효자, 열녀, 형제의
도리를 다룬 교훈적인 이야기가 매 폭마다 두 장면씩, 모두 스무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병풍은
1924년에 제작된 것으로, 약 백 년
전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와 그림으로 도덕적 가치를 배웠는지를 잘
보여준다. 초상화가로 명성이 높았던 채용신이 이러한 교육적인
병풍도 제작했다는 사실은 흥미롭게 볼 만하다.
스무 장면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는 효자로, 모두
아홉 장면이다. 이 중 한 장면은 세종 대에 편찬된
『삼강행실도』에서, 나머지 여덟 장면은 정조 대에 간행된
『오륜행실도』에서 취한 것이다.
이 글에서는 효자를 주인공으로 한 장면들에 주목하여, 그 내용과
표현 방식 그리고 오늘날의 시각에서 읽을 수 있는 의미를
살펴본다.
『삼강행실도』와 『오륜행실도』는 국가가 나서서 편찬한 만큼
정교하게 새겨진 목판으로 찍은 삽화가 남아 있다. 이에 비해
채용신의 《행실도》 병풍 속 인물들은 마치 한 폭의 풍속화를
보는 듯 현실감 있게 묘사되어 있다. 등장인물들은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정을 드러내었는데 이러한 세밀한 묘사는 이야기의
긴장감과 설득력을 한층 높여준다. 교훈은 글로 전달되지만,
감정적인 공감은 그림을 통해 이루어진다.
효자도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대부분 어린아이들이다. 물론 이
장면들은 실제 일상을 기록한 풍속화라기보다, 한국과 중국의
고전에서 전해 내려오는 효행담을 시각적으로 재현한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이 그림들이 전하는 조선시대의 효행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로 다가올 수 있을까.
효의 본질은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시대적
상황에 따라 재해석되어야 할 개념일까. 이 병풍 속 장면들은
이러한 질문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3 <양향익호楊香搤虎>
4 <왕상도리王祥禱鯉>
문자와 그림이 함께 어우러진
이 《행실도》 병풍은,
보고 읽는 사이에
저절로 배움이 일어나는
그림인 것이다.
5 <맹종읍죽孟宗泣竹>
첫 번째 장면인 <곽거득금郭巨得金>은
『삼강행실도』에 실린 이야기로,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가장
충격적이고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다.그림 1 곽거
부부가 흉년이 계속되자 홀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어린 아들을
땅에 묻으려 했다는 사연이다. 이 사연은 독자에게 강한 충격을
주어 교훈을 각인시킨다. ‘효’라는 목적을 위한다면 과정과 방법에
윤리적인 문제가 있더라도 괜찮다는 논리인데, 이후
『오륜행실도』를 편찬할 때에는 이 이야기가 빠진다. 이는 효에
대한 인식이 점차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효자 가운데 가장 고령의 인물은 ‘노래’라는 일흔 살의 노인이다.
그가 아흔이 넘은 부모를 즐겁게 하기 위해 색동옷을 입고
아이처럼 춤을 추며 재롱을 부린 장면이 판화로 묘사되어
있다.그림 2 이 이야기는 거창한 희생만이 효가
아니라,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는 소소한 행동도 귀중한 효행임을
일깨워 준다.
이어지는 <양향익호楊香搤虎>는 효녀 양향의
이야기로, 위기 상황에서 나타난 효심을 해학적으로 풀어낸
장면이다.그림 3 아버지와 함께 밭일을 하던 중
호랑이를 만난 양향이 아버지를 먼저 피신시키고 맨손으로
호랑이를 제압했다는 설정은 비현실적이지만, 그만큼 효의 힘을
극적으로 강조한다. 그림 속 호랑이가 위압적인 맹수가 아니라
온순한 존재로 표현된 점은 이러한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뒷받침한다.
왕상과 맹종의 효행은 그중에서도 널리 알려진 이야기들이다.
<왕상도리王祥禱鯉>에서는 병든 노모를 위해
잉어를 구하려는 왕상의 모습이 화면 중심에 배치된다.그림 4
왕상이 도끼로 얼음을 깨는 순간, 잉어가 튀어 오르는 장면을
그렸다. <맹종읍죽孟宗泣竹>에서 맹종은 병든
어머니를 위해 한겨울에 죽순을 구하러 대나무밭으로 향한다.그림 5
죽순을 구할 수 없음을 알게 된 맹종은 대나무를 붙잡고 눈물을
흘렸고, 그 눈물이 떨어진 자리에 죽순이 솟아났다는 이야기다.
효심 어린 눈물이 자연을 감동시켜 기적을 일으킨다는 이야기다.
6 <민손단의閔損單衣>
<민손단의閔損單衣>는 계모와의 갈등을 다룬
이야기다.그림 6 계모는 자신이 데려온 친아들들에게는
솜옷을 입히고, 민손에게는 대나무잎을 넣은 옷을 입힌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가 계모를 내쫓으려 하자, 민손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계모를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청한다. 계모가 떠나면 세
아들이 모두 추위에 떨어야 하지만, 남아있다면 자신 한 사람만
견디면 된다는 논리였다. 이 말에 감동한 아버지는 결정을 거두고,
계모 또한 마음을 고쳐 선한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감동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이야기지만, 오늘날에는 그 해석이 다소
엇갈릴 여지가 있다.
<자로부미子路負米>에는 공자의 제자 자로가 먼
길을 오가며 쌀을 메고 부모를 봉양하는 모습이 담겼다.그림 7
고된 노동 속에서도 밝은 표정을 짓는 자로와 온화한 부모의 얼굴은
효가 고통이 아니라 기쁨의 실천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진씨회반陳氏會飯>은
『오륜행실도』의 ‘진씨군식陳氏羣食’에 해당하는
장면으로, 형제간의 화목을 주제로 한다. 진씨 집안은 식사 때마다
자녀들이 모두 모였고, 수십 마리의 개들까지 함께 밥을 먹었다고
전해진다.그림 8 그림 속에서는 ‘ㄷ’자형 가옥을
중심으로 어른은 가운데에, 남자아이들은 왼쪽에, 여자들과
여자아이들은 오른쪽에 자리해 있다. 보는 이가 식사의 광경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구성된 화면이다. 특히
개들에게까지 먹이를 나누는 장면은 일상의 풍요와 공동체적 질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7 <자로부미子路負米>
교육과 학습은 주로 문자로 된 책으로 전달되지만, 여기에 그림이
함께한다면 이야기는 훨씬 더 생생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효를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도 이미지를 통해 감각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
『삼강행실도』와 『오륜행실도』에 수록된 삽화들은 이러한 효과를
극대화한 시각적 매체였다.
이 《행실도》 병풍을 학습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야기의 맥락을 정확히 이해하는 과정이 먼저여야 한다. 책을 통해
얻은 지식은 그림을 통해 다시 확인되고, 감성적인 공감을 거쳐
실천으로 이어질 힘을 얻게 된다. 문자와 그림이 함께 어우러진 이
《행실도》 병풍은 보고 읽는 사이에 저절로 배움이 일어나는 그림인
것이다.
8 <진씨회반陳氏會飯>
《행실도》는 채용신이 그린 10폭 병풍으로, 폭마다 두 장씩 총
스무 장면의 교훈적인 이야기가 담긴 국립농업박물관 소장
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