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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고 싶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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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서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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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다녀온 국가 기관 산하 박물관들은 어느 정도 비슷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박물관의 전시물 앞에서 관람객들은 정중했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박물관 내부를 걸었다. 유리 전시관 너머 도자기와 서화는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아득한 기분도 들었다. 그것은 지금의 내 삶과 시간적으로도, 감각적으로도 멀리 떨어진 듯했다. 그래서 국립농업박물관에 들어섰을 때 나는 예상치 못한, 기분 좋은 낯섦과 마주했다. 이곳은 분명히 다른 결을 가진 박물관이었다. 국립농업박물관은 수원 서둔동, 정조가 축조한 저수지 축만제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다. 축만제는 정조가 화성 인근의 둔전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든 저수지로, 조선 후기 농업 진흥책의 산물이었다. 200여 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왕이 농사를 위해 물을 가두었던 자리 곁에 지금은 농업의 역사와 오늘을 함께 보여주는 박물관이 들어선 셈이다. 우연이라기엔 꽤나 다정한 배치였고, 그 사실을 알고 들어선 박물관은 시작 전부터 이미 조금은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관람객이었다. 입구부터 유아차를 끌고 아이와 함께 입장하는 부모가 많았고 넓은 복도를 가로질러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빠르게 걷는 아이들, 그 손을 잡고 함께 놀며 웃는 조부모, 방학을 맞아 박물관에 모인 청소년도 눈에 띄었다. 최근 박물관이 전반적으로 ‘핫한’ 공간이 되었다지만, 다른 박물관들을 방문했을 때 느꼈던 것과는 분명히 다른 생동감이 관람객들 사이에 가득했다. 2022년 개관 이래 이미 지역 주민들의 일상에 충분히 녹아든 듯, 모두 공원을 찾은 것처럼 편안하게 공간을 누비고 있었다. ‘농업이라는 주제가 우리 삶과 밀접하긴 하지만, 이렇게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주제였던가?’라는 나의 짧은 편견을 부수는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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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눈에 들어온 것은 전시의 동시대성이었다. 비교적 최근에 개관한 박물관이어서 그런지 다소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듯한 ‘농업’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지루하지 않게 풀어내려는 박물관의 고민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전시 리플릿은 이미지 위주로 깔끔하게 구성되어 전시실 동선을 파악하기 쉬웠고, 주요 유물도 크게 보여주었다. 함께 배치된 어린이·청소년용 핸드북도 귀여운 일러스트와 함께 다양한 활동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전시실에는 청소년들이 좋아할 디지털 패널과 기술을 활용해 전시물을 둘러볼 수 있는 체험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고, 중장년층이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재현한 정미소와 외양간, 예전에 쓰던 트랙터도 함께 배치되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종자, 재배, 수확, 저장과 유통, 축산에 이르기까지 상설 전시실이 다루어야 할 주제를 놓치지 않고 신중하게 배치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미래 산업과 농업 발전을 함께 조망하고, 동물과 농업이 공생해 온 역사를 엮어 보여주었으며, 직접 트랙터에 올라 운전해 볼 수 있는 체험형 전시까지 둘러보고 나니 ‘이 박물관은 단순히 농업의 역사와 계보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와중에 이 박물관에서 가장 강렬하게 남은 인상은 과거 선조들이 사용한 투박한 유물과 벽에 펼쳐지는 조선 시대 농업에 대한 그림 그리고 논 몇 평을 그대로 떠서 옮긴 듯 엔진 소리를 내며 움직일 것 같은 이앙기가 함께 전시된 공간을 마주하던 순간이었다. 나는 문득 이 박물관이 다루는 주제가 인류 역사인 동시에 나와 얼마나 밀접하게 맞닿았는지 실감했다. 아름다운 청자와 순백자가 주는 황홀함은 없었지만, 여기에서 나는 더 직접적인 감각을 느꼈다. 오랜 세월 사람의 손을 거치며 사용되고 발전해 온 농기구들은 내가 매일 먹는 밥과 반찬이 어디에서, 어떤 손과 도구를 거쳐 오는지 상기시켰다. 그것은 눈으로 감상하는 유물이라기보다 내 피부와 입에 와닿는, 살아있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농업은 인류가 정착 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끊긴 적이 없는 삶의 근간이다. 그리고 이 박물관은 그 당연한 사실을 몸으로 느끼게 해 주는 곳이다.

국립농업박물관을 나서며 든 생각은 결국 좋은 박물관이란 다루는 주제와 박물관의 유물이 얼마나 유명하고 화려한가 하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이 그 주제와 얼마나 가깝게 만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이곳은 농업이라는, 어쩌면 가장 오래되고 가까이에 있어 오히려 잊기 쉬운 주제를 다시 우리 생활의 복판으로 끌어왔다. 그 자리에는 귀족적인 신비로움은 없었지만 살아 숨 쉬는 친밀함이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