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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이 들려주는 가을 농촌의 풍요로운 풍경
정약용의 『가을 문암산장에서』 로 바라본 조선시대 가을걷이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표지
ⓒ한국학중앙연구원
추일문암산장잡시」
茅棟蕭條只數椽, 恰看香稻滿階前. 試思方朔長安米, 爭似歐陽穎尾田.
谷深泉寒氣未平, 東風九月太無情. 今年悔種緗毛稬, 來歲須栽坼背秔.
山裏煙光屬晩秋, 全家都在石田頭. 棉花日晒敎兒拾, 豆莢霜凋倩媼收.
水市西通五里纔, 高秋穴口賈船來. 朝盤怪有紅鰕漿, 聞道前宵賣炭廻.
樵叟前林打鹿歸, 一村讙賀動山扉. 地爐燒炙兼蔥蒜, 誰道農家未齧肥.
靑帝峯陰接潻園, 溪山恰是武陵源. 今年不患罌無粟, 新採人蔘八九根.
뜰 앞엔 향도 벼가 가득 찼구나.
동방삭의 장안 쌀을 생각도 해보고
구양수의 시골 밭과 견주어보네.
골 깊고 샘물 차서 기후가 아니 고른데
9월까지 부는 높새바람이 너무하구나.
금년엔 찰벼 심은 것 후회했으니
내년엔 마땅히 메벼를 심어야겠네.
산속이라 풍경은 온통 늦가을인데
온 가족 모두 다 밭머리 나와있네.
볕에 말린 목화는 아이에게 줍게 하고
서리 맞은 콩깍지는 할멈에게 걷게 하네.
맑은 가을 물 어귀에 장삿배 들어오네.
아침상 새웃국이 괴이하다 여겼더니
어젯밤 숯을 팔아 돌아왔다 말하네.
나무꾼이 앞산에서 노루 잡아 돌아오니
온 마을 환호 소리 산중 사립 뒤흔드네.
흙화로에 구워내고 파·마늘 곁들이니
농가에선 고기 못먹는다 누가 말하랴.
청제봉 북쪽은 칠원潻園에 접해있고
산수 모습이 무릉도원과 흡사하네.
금년엔 쌀독 빌까 걱정할 게 없으니
인삼을 팔구 뿌리 새로 캤기 때문일세.
(…중략)
- 정약용,
「가을 문암산장에서秋日門巖山莊雜詩」 『여유당전서』
『여유당전서』 중 「가을 문암산장에서」 부분 ⓒ한국학중앙연구원
「가을 문암산장에서秋日門巖山莊雜詩」는 다산 정약용1762~1836이 1787년 9월이하 모두 음력에 쓴 시다. 문암산장은 벽계檗溪 남쪽에 있다고 했는데, 이곳은 서쪽으로 북한강, 남쪽으로 남한강으로 둘러싸인 산간 지역이다. 다산이 태어난 마재마을에서 가깝다. 다산은 그해 4월 문암산장에 놀러 와서 이곳 토지향장를 매입했다. 그리고 다시 9월에 추수를 보러 와서 수십 일을 머무르면서九月也, 時因看刈留數十日 이 시를 남겼다.
농촌도 지역마다 풍광이 다르다. 문암산장이 있는 곳은 골짜기가 깊은 산속 마을이며, 초가집이 몇 채뿐인 작은 마을이다. 가을이 일찍 와서 9월은 이미 늦가을이지만, 가을걷이는 늦어서 이제부터다. 농사일은 늘 기후가 걱정인데, 여름에 부는 높새바람이 가을에까지 부는 게 안타깝다.
시에 나타난 가을 모습이 풍요롭고 활기차다. 들에 향도香稻 벼가 가득하다. 작물은 다양해서 목화도 심고 콩도 심었다. 아이들도 할머니도 모두 농사일에 바쁘다. 산간 지역이라 어물魚物과는 거리가 멀 것 같다. 그러나 물줄기를 통해 장삿배들이 드나들고, 어시장이 열려 숯을 팔아 새우를 사온다. 산간 지역이라고 궁색하지 않다. 환금성 작물인 인삼 뿌리도 캐어 살림이 여유롭다.
산간 지역이라 노루와 호랑이도 가깝다. 나무꾼이 노루를 잡아 와서, 한바탕 마을 잔치가 흥겹다. 한밤중 호랑이의 등장은 생생한 사건이다. 시는 농촌의 풍요로운 가을 풍경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데, 또 다른 주요한 기조가 바로 귀향 또는 은둔의 꿈이다. 시에 나타난 구양수의 시골 밭, 장자의 칠원, 무릉도원, 선방禪房 등이 그런 뜻을 담고 있다.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젊은 다산은 천주교 문제와 진로 문제로 고민 중이었다. 22세에 성균관에 들어간 다산은, 23세 때1784년 이벽1 으로부터 처음 천주교에 대해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러나 을사추조적발사건2 이후 이벽은 가족의 단속 속에 병사했다. 다산은 이벽을 그리워하는 글을 남겼다. 1787년 무렵 이후 다산은 천주교 공부에 더욱 심취했다.
다산이 벼슬에 나아가려면 대과에 합격해야 하는데 여의치 않았다. 1787년 8월에 정조가 다산에게 선물로 『병학통兵學通』을 하사했는데, 다산을 무인武人으로 키울 의도가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시의 첫째 연에 등장한 ‘동방삭의 장안 쌀’은, 동방삭이 한나라 무제에게 자신을 능력만큼 대우하지 않으니 장안을 떠나겠다고 말한 고사를 담고 있다. 문신을 지향하던 다산이 슬쩍 감정이입을 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관직에 나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초야에서 농사를 지으며 은둔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다산의 고민이 시에 담겨 있지만, 다산은 마침내 28세 때1789년 대과에 합격하여 벼슬에 나아갔다. 30세 때1791년
진산사건3을 계기로, 관리의 신분으로 국법을 어길 수 없어 제사를 반대하는 천주교와도 결별하게 된다.
20대 후반의 젊은 다산이 쓴 시는, 가을 산간 농촌의 풍요로움과 활기찬 풍경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진로를 고민하던 착잡한 마음을 시로써 달랬겠지만, 시가 그려낸 풍경은 당시 농촌의 생생한 가을 모습을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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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을사추조적발사건1785년 포졸 무리가 천주교도의 비밀 집회를 적발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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